이상민, 김성한씨와의 인터뷰; 진행 이세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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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진: 미국에 머무는 시간도 길지 않은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민: 아닙니다. 좋은 경험을 많이 하면서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세진: 저희 편집부에서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해왔습니다. 첫 번째 질문을 드릴게요. 형제님께서는 병역거부를 실천하셨는데요. 병역 거부가 복음 증거, 혹은 복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상민: 저는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힘을 쓰지 않는 것, 폭력을 쓰지 않고, 누군가를 강제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나눈 다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제가 성경을 공부 하면서 동의한 부분은 신이 인간에게 겸손의 본을 보이셨다는 점이에요.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셨다는 것 자체가 제가 미처 헤아릴 수 없는 겸손이라고 느꼈어요. 특히 성경 본문 중,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가 병사의 귀를 쳤던 장면이 있는데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그러지 말아라. 내가 당장에라도 하늘 아버지께 요청해서 군사들을 부르면 다 제압할 수 있는 것 인데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어떻게 말씀이 이루어지겠느냐”라고 대답하시던 부분이 저에게 큰 통찰을 주었습니다. 2 능히 행할 능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희생하며 겸손함의 본을 보이셨다는 점 말입니다.
지금 한국은 한중일간의 군비경쟁이 굉장히 심해요. 하지만 과연 우리가 서로의 몸집을 키워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인지 의문이 듭니다. 언제까지 서로의 힘을 더 키워야 하는 가의 문제에서 함부로 확답할 수는 없지만 저는 다른 길을 걷기를 바랬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다른 길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군사적 방식에 참여하지 않고 비폭력의 삶을 사는 것이 복음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진: 네. 잘 알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 여쭤 보겠습니다. 형제님처럼 비폭력의 삶이 복음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 다른 이들을 전도하고 개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참 복음 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분들께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상민: 그러한 질문은 예전에도 상당히 많이 받았어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Francis of Assisi)의 말을 인용하곤 합니다. 프란체스코는 우리가 어떻게 전도하면 되겠냐는 질문에 “쉬지 말고 전도하라. 항상 전도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단, 꼭 필요할 때만 말을 사용해라”라고 덧붙였습니다. 저에게 참 깊은 통찰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복음이라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하고 인간의 짧은 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구나. 쉽게 고백하기도 어려운 것인데, 우리가 말로만 한다고 그게 중요한 것일까? 오히려 복음을 우리 삶 속에 녹여내고,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웃음)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 학교에도 ‘전도 폭발’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굉장히 열심이 있는 단체인데….
세진: 전도폭발이요? 이름이 참 재미있네요. 전도와 폭발이라….
상민: 네, 전도폭발. 빵 터지죠! 하하. (웃음) 이 단체가 굉장히 체계적으로 훈련하고 열심히 활동해요. 저에게도 접근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사실 그분들과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질문에서 제 마음이 걸렸어요.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 라고 물어보는데, 제가 답변하기를 “그것은 사실 대답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럽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라고 했죠.
구원은, 글쎄요…. 구원은 완성되어 가는 것이고, “예, 아니요”로 쉽게 단정될 수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바울 또한 구원에 대해서 항상 두려워하고 떨리는 마음이 있다고 성경에 고백한 바가 있는데….3 ‘어떻게 사람이 구원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논할 수 있냐?’ 라고 제가 질문을 했던 적이 있어요.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도 비슷한 것 같아요.구원과 상관있는 행동과 구원과 상관 없는 행동을 배제한 체, 말이나 고백으로만 구원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면 아쉽습니다. 또 조금 고립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고백과 행동은 절대로 따로 분리해서 이해하면 안 되고, 반드시 같이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행동으로 보이는 것과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절대 분리할 수 없지요. 그래서 야고보 또한 그것이 분리되는 신앙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해요.4
세진: 형제님께서 나누신 것을 듣고 부가적인 질문이 생각났는데요. 방금 구원은 우리가 확실할 수 없는, 단순한 고백으로만 확실할 수 없는 참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상민 형제님에게 구원이 스스로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어떻게 병역거부를 하고 평화의 삶을 사는 것이 구원의 일부분이라고 너는 확신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상민: 음…. 이런 질문인 거죠? “너는 옳게 행동하고 있는거냐? 너의 행동에 확신이 있느냐?”
세진: 네, 그렇죠.
상민: 음…. 병역거부를 선택한 저 자신도 사실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크든 작든 간에,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갖고 움직이고 신념을 갖고 최선을 다하듯이, 저도 마찬가지 인것 같아요.
‘병역거부만이 옳은 길이야’라고 저는 결코 함부로 말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다양한 신앙의 표현이 있고 또 그 표현에 따르는 신앙의 열매가 있듯이, 그 열매를 통해서 그 사람의 신앙을 어느 정도 판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실천을 옮기는 그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단순히 나의 방법만이 구원에 이르는 확실한 길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말이죠. 그래서 누가 저에게 만약 너의 행동이 맞는 것이냐고 질문했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의 저의 판단과 저의 상황에서는 이것이 저의 최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분들의 상황과 판단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요.
세진: 최선이 라는 말이 공감이 되네요. 저희가 삶을 살면서 어떤 부분에 완전한 확신이 있어서 행동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죠.
상민: 그렇죠. 구원에 이르는 길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글쎄 이것은 제가 감리교 배경을 갖고 있어서 하는 표현일 수도 있어요.
세진: 아, 감리교 배경이세요?
상민: 제가 성결교 바탕이에요. 성결교도 웨슬리안 배경이잖아요?
세진: 네. 그러면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질문 또한 어떻게 보면 두 번째 질문과 비슷한 것 같아요.
형제님께서는 마태복음 마지막 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사회적 평화를 위한 노력이나 증인의 삶을 사는 것도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상민: 네.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나눴듯이 성 프란체스코가 하신 말씀을 본받아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믿는 신념을 따라 움직이고 사는 것이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하여 사는 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고 생각해요. 앞서 ‘전도폭발’에 나오는 질문을 던지는 분에게 제가 가진 아쉬운 점은 예수님의 지상명령과 같은 성경의 내용을 약간 문자 주의적으로 해석한다는 느낌이 있는 것이죠. 우리가 본을 보이고 선한영향력을 끼치고 가르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제자도의 삶을 살아내는 한 형태로 볼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제자도 운동’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회 안에만 고착되고, 구역, 셀 등의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어서 우리끼리만 행복한 착각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세진: 그럼 오히려 반대로 사회정의에는 모든 것을 걸지만 예수를 삶의 주나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고, 존경할만한 인물, 윤리적 선생으로만 생각하는 성향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상민: 로마서 5-6장에 나오는 구원에 관한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 같은데…. 글쎄요. 제가 정의하기에는 뭔가 부담스럽네요. (웃음) 물론, 제 나름대로 정리된 생각은 있지만, 분명히 바울은 예수를 접하지 못하였지만 죽은 이들에게 어떤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베드로 전서인가요? 예수께서 음부에 내려가서 죽은 자들을 위해 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예수에 관한 직접적인 고백이 없으므로 저 사람은 죽으면 이렇게 혹은 저렇게 될꺼야라고 말하는 것은 좀 무례한 태도 같다고 여겨져요.
세진: 구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네요.
상민: 네. 그렇기도 하죠. 어떻게 보면… 저는 그런 질문이 같은 크리스천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느껴 져요. 그래서 주변 크리스천 친구들이 이런 부분을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 “그럼 너는? 너는 너의 구원을 확실할 수 있어? 죽어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니야?”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라요. (웃음) “너는 예수를 너의 주로 고백하지만, 그만한 열매가 네 삶에 있느냐?” 혹은 “네가 하나님을 ‘주여 주여’ 고백하는데, 막상 그분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너를 모른다고 하신다면,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라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 사실 제 안에 있죠.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확신이 있는 사람임에도 선한 것을 끊임없이 지키려고 하는 분들의 노력이 매우 귀하다고 생각해요.
세진: (침묵) 형제님이 생각하는 구원은 무엇인가요?
상민: 제가 생각하는 구원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구원에 관한 정말 다양한 이론과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국 제가 생각하는 완전한 구원은 제가 동의한 성경의 가치가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주기도문에 있는 “나라이 임하옵시며,” “Thy Kingdom come”5인데요. 저는 이것을 바라고 있고, 이것이 가장 궁극적인 구원이 아닌가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이루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 않으냐고 생각합니다.
세진: 네. 감사합니다. 네 번째 질문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현재 부르심은 무엇이며, 또 그것을 위해 아나벱티스트 신앙이 나눌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형제님은 자신을 아나벱티스트라고 생각하시나요?
상민: 이 부분이 사실 좀 힘든 질문이에요. 저는 아나벱티스트의 배경을 가진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에 도움을 얻기 위해 아나벱티스트/메노나이트 교회를 찾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부분은 저 자신의 태도의 문제인데요. 제가 저 자신을 정의하고 정의 받는 데에 조금 민감해요. 그래서 누군가는 “너는 아나벱티스트다”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니다”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제 대답은 (조심스럽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말할 것 같아요.
세진: (웃음) 아까 구원에 관한 질문과 뭔가 좀 비슷하네요.
상민: 네. 저는 애매한 것보다는 뭔가 확실한 것에 저 자신을 투자하는 것 같아요. 구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메노나이트인가 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옳다고 확신하는 일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 점은 메노나이트 신앙으로부터 많은 영향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아나뱁티스트다 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네요. 멤버쉽이나 또 다른 부분에는 좀 약할 수 있지만요.
그 전에 질문하신 네 번째 질문은 제가 병역거부자라서 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의 소수자가 된 경험이 있어서 다양한 소수자의 시각에 대해 공감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관념적인 평화가 아니라 정말 실제적인 평화를 위해 한국교회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교회가 오히려 혐오를 부추기고 있는 측면이 많아요. 동성애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그렇고, 북한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런데 이것이 올바른 교회의 역할인가 생각할 때,솔직히 절망을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어떻게 교회라는 단체, ‘몸’이 혐오와 분노와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을 할 수 있는지요.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품을 것인지, 용서할 것인지에 조금 더 한국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집중해야만 하지 않으냐고 조금 더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국에 아나벱티스트에 대하여 공부하고 알아보려는 움직임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아나벱티스트의 신앙과 전통과 유산을 나눔으로써 한국교회의 약한 측면을 조금 더 보강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합니다.
세진: 마지막 질문입니다. 형제님의 병역거부 경험을 한국 기독교 역사 속 박해라는 큰 맥락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시는지요? 예를 들어 19세기 초의 가톨릭 순교자나 20세기 민중 신학 운동의 박해 경험처럼요.
상민: 글쎄요. 허허 (웃음). 제가 쉽게 답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신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한국 기독교의 지금 상황에서 병역거부는 하나의 사고라고 봐요.
세진: 어떤 사고요?
상민: 어떤 사고냐 하면 ‘배달 사고’ 인 것이죠. 기독교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중요한 유산이 전달되지 않아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 같다고 느껴요. 평화적인 삶은 분명히 기독교가 가진 고귀한 유산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는 부분인데, 그것이 전달되면서 빠진 것이므로 순교나 박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배달 사고고, 비극이라고 저는 느껴요. 병역거부와 같은 평화적 실천은 2000년 넘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또 한국기독교 안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에요. 그 긴 역사 속에서 분명히 고귀하게 전달되어 내려오던 것인데, 그런 실천을 보고 “저것 참 이상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사고라고 저는 생각해요. 사실 저는 이런 식으로 제 행동을 강하게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가 어딘가에서 그냥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거죠. 사실 메노나이트나 평화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신앙을 가지고 병역거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신앙이 가지고 있는 한 측면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은 것이죠. 이러한 실천은 기독교 역사 속에 없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러한 가치를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더 큰 문제 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것은 명백한 배달 사고인 것 같아요.
세진: 그럼 배달 사고는 언제부터 일어났나요?
상민: 그건 콘스탄틴 (Constantine)까지 올라가야겠지요?
세진: 그렇죠. 그럼,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죠? 처음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로 올라가야 하나요? 이 질문은 한국 기독교 안에서 평화적 실천이 슬그머니 빠졌던 점을 지적하는 질문인 것 같거든요.
상민: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교회가 정권과 손을 잡으려고 한 시점이 제일 컸다고 봐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사람을 여호수아 장군 같이 묘사했던 점이죠. 알게 모르게 한국 기독교 선배들이 강한 힘에 대한 선망을 갖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신앙이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나름 로컬라이징(localizing)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헨리 나우웬 (Henri Nouwen)이 동성애적 성적 지향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았고 최근에 와서 조금씩 소개된 바가 있죠. 존 스토트 (John Sttot)가 병역거부자라는 사실도 그분의 책을 번역한 분들이나 그분을 아는 분들은 당연히 알았을 텐데요. 또 예수원의 아처 토레이 3세 신부님(Reuben Archer Torrey Ⅲ, 대천덕 신부)도 병역거부를 하셨다는 이력이 그분의 삶과 이야기가 소개될 때 같이 소개될 법도 한데 그런 사실이 불편하니까 일부러 가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첫 단추가 어디서 꼬였나 하는 부분을 정확히는 잘 모르겠고요. 이것은 성한이형 분야 같은데요. 이승만까지 가야하지 않나요?
김성한: 배달사고가?
상민: 네.
성한: 그런데 배달 사고라고 만약에 틀을 잡는다면, 나는 사실 앞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봐.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들이 사실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아까 말했던 사람들의 질문 중 “네가 병역 거부를 한 동기가 정말 온전히 신앙에서 나온 것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은 굉장히 무례하게 여겨질 수 있어.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가장 많이 씨름해야 하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지 않나 생각해.
세진: 그래서 불편한 거죠.
성한: 그렇지. 예를 들어, 상민이가 아까 ‘배달 사고’ 라고 말했는데, 그 주장은 어떤 형태로든 예수의 가르침의 중심이나 원형이 있었을 것이라고 간주하는 거잖아? 그리고 우리의 구미에 맞게, 그게 콘스탄틴 (Constantine)이 되었든 이승만이 되었든, 그 원형을 왜곡시켰다고 하는 거고, 우리는 지금 그 왜곡에 대해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그러면, 예수가 가졌던 복음의 원형이라고 하는 것으로 돌아가 보자는 거지. 그럼 아까 말한 대로 마태복음 28장 19~20절이 말하는 제자도로 돌아가겠지. 물론 우리는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제자도’와 ‘선교,’ 즉 평화도 포함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고 행하게 하는 복음으로 돌아가는 건데….
내가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에서 갖는 어떤 긴장은 뭐냐면, 예수를 구원의 중요한 핵심으로 고백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워진다는 점이지. 왜냐하면, 그 고백이 누군가는 밀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야. 그래서 긴장이 생기는 거지.
상민: 그렇죠.
성한: 나는 그 긴장을 부인하지 않아. 그리고 그 긴장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내가 두려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주라고 고백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 사람을 우리가 따라갈 수 있냐는 거야.
그런 면에서 나는 너에게 따지듯이 질문했던 사람들의 질문이 거친 질문일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느끼는 본능적인 어떤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자연스럽게 삶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도 맞고,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강조하지 않는 것도 맞는데, 나는 우리의 내적인 태도가 우리 다음 세대 사람들과 또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 과연 우리는 충분한 내공을 가지고 우리 자녀들을, 혹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교육하고 일으켜주고 있는가. 그 부분에서 우리에게 많은 도전이 놓여있다고 생각해. 지금 현재 북미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도….
세진: 맞아요.
성한: 왜냐하면 외부적인 도전이 없어지고 나서부터, 예를 들면 이제 징집이 없어지고 나니까 평화라는 것이 붕 떠버리는 거야. 어찌 보면 외부에 반응하는 평화, 소극적인 평화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적극적인 평화의 모습은 잃어버리게 되는 거지. 그래서 평화를 중심으로 한 예수의 제자도가 지금 북미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는 굉장히 공허하게 되어버린 상황인 거지.
세진: 아니면 예수와는 상관없는 평화가 생기기도 하는 거죠. 그런 부분도 많이 보여요.
성한: 그렇지. 오히려 이제, 평화 전통으로서의 틀만 남아있고 예수는 없어져 버리는 거지.
세진: 맞아요. 그래서 아까 제가 그 질문을 한 거예요. 구원에 대해서….
성한: 그래서 되게 두리뭉실해지고, 하나님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되는 휴머니즘에 기초한 평화주의로 얼마든지 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지점까지 가기도 하는 거지. 스펙트럼처럼 쭉 펼쳐 져 있는 건데 그중에서 우리가 굳이, “예수님 얘기가 중요하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인가?’ 라는 의문이 들어. “지금 당장 고백해봐!” 라고 다그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쨌든 그 중심으로 우리의 생각과 대화들이 이루어지고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싶어.
그래서 아까 말한 배달 사고든 하나님의 통치든 (“thy kingdom come”)하는 말이 이 맥락 안에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우리가 그런 맥락을 놓치면, 지금의 내 현실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붙잡고는 있어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만 선택적으로 가져다 쓰게 될수 밖에 없는 것 같아. 내 필요와 상황에 따라…. 사실 이게 나의 고민이야. 우리가 어떻게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여전히 예수가 주라는 고백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은 1~3세기의 기독교인들이 취했던 태도인 거잖아? 시저(Cesar)가 왕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증거하는 모습은 힘이나 무기를 들지 않고… 내가 죽더라도….
세진: 그래서 죽었죠.
성한: 그렇지. 하지만 그들이 한 고백의 대상과 내용은 분명하지 않았나 생각해. 그러나 우리가 그 고백을 희미하게 만들면, 그다음 얘기는 산으로 가버린다고 생각해.
상민: 갑자기 ‘난 망했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세진: 왜요?
성한: 그게… ‘나도 잘 모르겠다,’ ‘고민이 된다.’ 이런 대답이 실존적인 대답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그렇지. 나도 구원에 대해 다 모르지. 나도 구원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하지만 상민이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 두려움 속에서 여전히 우리가 최선을 다하며 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고, 그러면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물론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성한 퇴장)
상민: 맞아요. 사실 제가 실존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앙의 신비함과 구원에 관한 고민도 저의 행동과 크게 연관되어 있어요. 그래서 제가 확실하다고 여기는 부분에 더 매달리는 것 같아요…. 그렇네요. 아까 복음/구원의 원형에 대해서는 뭔가 모호하게 대답해놓고 뒤에서 배달 사고였다는 표현을 쓴 것은 모순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네요. 하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 안에서 배달 사고와 더불어 어떤 치우침이 있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세진: 평화에 관한 부분이 슬며시 빠졌다는 점인가요?
상민: 네, 저는 그 시점이 앞서 말한 대로 한국의 국부라고 불리는 이승만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진: 형제님이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느낀 점은 형제님에게는 구원과 복음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그러한 고민을 계속하는 과정 안에서 병역거부를 선택하신 것 같아요.
상민: 그래서 제가 한때 즐겨 쓴 표현이 예수를 믿는 것보다, 어쩌면 예수에 동의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 나라와 구원, 이 부분은 잘은 모르겠는데…. 예수라는 사람이 말한 가치와 그가 보인 본보기들이 나를 감동하게 했고, 나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답처럼 느껴 졌고, 그분의 통치 방식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것이 저에게는 구원처럼 다가왔던 거죠. 그래서 지져스 팔로워(Jesus follower)란 표현도 잘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침묵) 음…. 이 질문을 내주신 분은 저의 답을 듣고 굉장히 실망하실 것 같네요….
세진: 응?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아까 성한 간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미국에서 징집이 없어지고 나서 미국 메노나이트 안에 평화 실천이 오히려 붕 떠버리는 현상을 많이 보거든요. 그러면서 형제님의 이야기가 북미 메노나이트 안에 퍼졌을 때, 과거를 그리워하며 형제님의 이야기를 너무 신성화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를 개인적으로 했었어요. 형제님의 결정을 제가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북미에서 형제님의 이야기를 접한 분들이 자신들의 옛날을 그리워하는 데에서만 멈추고, 지금 현재 자신들의 자리에서의 평화 실천에 대한 신앙고백의 필요와 실질적 실천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될 텐데라는 고민을 솔직히 했거든요.
상민: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나와 이제는 상관 없다고 느꼈던 것들이 어쩌면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것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징집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이제 결국 군대에 몰리는 사람들은, 유색인종인들이나 저소득층 사람들인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군대를 선택했던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서 주한미군범죄가 많이 늘어나고 있고요. 굳이 그렇게 연결하면 안 되겠지만요.
세진: 일리가 아예 없지 않죠.
상민: 세계대전 당시와 그 이후에 메노나이트가 열심히 평화 운동을 펼쳐서 병역거부를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이제 징집은 없어지게 되었지만, 군대제도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미국땅과 멀리 떨어진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는 현재도 미군 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고, 또 그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조심스럽게 묻고 싶기도 하네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폭력은…. 어떤 형태로든….’
세진: 형제님이 복음이나 구원의 확신에 대한 고민을 갖고 계신 점에 대해 약간 부끄러워하시는 점이 이해가 되지만, 저는 오히려 형제님께서 그런 고민 중에 병역 거부의 길을 선택하셨다는 것에 많은 감동을 받아요. 제가 형제님을 대했을 때의 느낌은…. 뭐랄까, 굉장히 사람다우신 분인 것 같아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정말 자신의 최선을 다해 진실하게 고민을 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형제님의 그런 “평범함”이 다른 분들에게 좋은 영향력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게 되네요. 이 형제가 스스로 확신에 차서 이 일을 실천한 게 아니라, 자신 나름대로 고민을 해서 한 결정인데,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형제님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우리도 우리의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최선의 결정과 고백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진솔하게 전해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 인터뷰,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라는 마음이 드네요. (웃음).
상민: 항상 망설이고, 항상 고민하는 게, 어쩌면 저를 표현하는 특징인 것 같아요.
세진: 어떤 확신이 와서 결정을 한 게 아니라, 어떻게 어떻게 씨름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보니 내 자신이 가장 약했을 때 내가 봐도 말도 안 되는 결정을 실천한 모습을 보는 것….
상민: 그래서 다들 “돌아보면 은혜다”라는 말을 하는 것 같네요.
세진: 네, 맞아요.
상민: 맞아요. 저도 그렇네요. 은혜인지 사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돌아보면 일단 놀라운 거죠.
세진: 네.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상민: 아니요. 제가 감사합니다.
Footnotes
이상민은 2007년부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고민하다가 긴 고민 끝에 2014년 4월부터 2015년 7월까지 1년 3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서울의 자전거 샵에 미케닉으로 일하고 있다.
김성한은 한국기독학생회 IVF 간사로 미디어 사역부와 인디밴드 코드셋으로 활동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인디애나주 고센에서 살면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으며, 현재는 한국 기독교의 민족복음화운동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이세진은 아나뱁티스트 위트네스(Anabaptist Witness)의 디자이너와 편집위원이며 하이블리 에뷔뉴 메노나이트 교회 (Hively Avenue Mennonite Church)의 일원이다.
이상민과 김성한의 관계는 (최소)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은혜와 평화교회(Grace&Peace Mennonite Church)에 함께 출석했다. 이 인터뷰는 김성한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형기를 마친 이상민의 고센 방문으로 이루어졌다.
마 25:53.
빌 2: 12.
약 2: 14-26.
마 6:10.